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2020년 팬데믹으로 인한 경제 충격, 그리고 연일 급변하는 주식 시장.
우리는 왜 이토록 중요한 경제 현상을 예측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까?
수많은 경제학자와 분석가들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미래를 전망하지만, 종종 현실은 그들의 예상을 보기 좋게 빗나갑니다. 이러한 예측의 한계는 어쩌면 기존의 주류경제학에서 우리가 경제를 바라보는 근본적인 관점에 문제가 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바로 여기, 기존의 경제학적 틀을 넘어 세상을 이해하는 새로운 렌즈, 복잡계 경제학(Complexity Economics)이 등장합니다.
이 글에서는 복잡계 경제학이 무엇인지, 기존 주류 경제학과 근본적으로 어떻게 다른지, 그리고 이러한 관점이 왜 예측 불가능한 주식 시장의 움직임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지에 대해 깊이 있게 탐구해 보겠습니다.
1. 복잡계 경제학이란?
복잡계 경제학은 주류경제학에서 마치 잘 짜인 기계처럼 경제를 바라보던 시각에서 벗어나, 경제를 수많은 주체들의 상호작용으로 끊임없이 진화하고 변화하는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 즉 '복잡계(Complex System)'로 인식합니다.
복잡계는 단순히 '복잡하다'는 의미를 넘어, 단순한 규칙을 따르는 수많은 구성 요소들이 서로 상호작용하며 예측하기 어려운 거시적인 현상을 만들어내는 시스템을 의미합니다.
1.1. 세상을 보는 새로운 렌즈, 복잡계
예를 들어, 개별 개미는 매우 단순한 행동 규칙에 따라 움직입니다. 하지만 수만 마리의 개미가 모이면, 누구의 지시도 없이 정교한 개미집을 짓고 효율적인 먹이 수집 경로를 찾아내는 등 놀라운 집단 지성을 보여줍니다. 개별 개미 한 마리의 특성만으로는 결코 설명할 수 없는 이러한 거시적인 질서가 바로 '창발(Emergence)' 현상이며, 개미 군락은 대표적인 복잡계의 예시입니다. 복잡계 경제학은 바로 이러한 관점을 경제 시스템에 적용한 것입니다.
경제는 수백만 명의 개인, 기업, 정부 등 다양한 행위자(agent)들로 구성됩니다. 이들은 각자의 판단과 정보에 따라 행동하지만, 그들의 상호작용은 개별 행위자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거대한 시장의 흐름, 경기 순환, 금융 위기 같은 거시적인 현상을 만들어냅니다.
2. 주류 경제학 vs. 복잡계 경제학: 무엇이 다른가?
기존 주류 경제학은 수학적 엄밀성과 모델의 간결성을 바탕으로 경제 현상을 설명하는 데 큰 기여를 했지만, 몇 가지 근본적인 가정에서 한계를 드러냈습니다.
2.1. '합리적 인간' vs. '적응하는 인간'
주류 경제학의 가장 핵심적인 가정 중 하나는 '호모 에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 즉 '합리적 경제인'입니다.
이는 인간이 완벽한 정보를 가지고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항상 최적의 선택을 한다는 가정입니다. 이 가정 덕분에 경제 모델은 깔끔한 수학 방정식으로 표현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의 인간은 완벽하지 않습니다. 제한된 정보와 인지 능력 하에서 결정을 내리고, 때로는 감정에 휩쓸리거나 다른 사람을 무작정 따라 하기도 합니다. 행동경제학이 바로 이러한 인간의 비합리적인 측면을 파고들었습니다.
복잡계 경제학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인간을 '최적화하는 기계'가 아닌 '적응하는 유기체'로 봅니다. 사람들은 완벽한 해답을 찾기보다는, 경험을 통해 배우고 주변 상황에 맞춰 자신의 행동 규칙을 끊임없이 수정하며 생존해 나간다는 것입니다.
2.2. '균형'을 향한 세상 vs. '끊임없이 진화'하는 세상
주류 경제학은 경제가 외부 충격이 없다면 수요와 공급이 일치하는 안정적인 '균형(Equilibrium)' 상태로 수렴한다고 봅니다. 시장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가장 효율적인 상태로 조절된다는 믿음이 깔려 있습니다. 이 관점에서 경제 위기나 불황은 균형에서 일시적으로 이탈한 비정상적인 상태로 여겨집니다.
반면, 복잡계 경제학은 경제를 균형이 아닌 '비균형(Disequilibrium)' 상태가 정상인 시스템으로 봅니다. 경제는 안정된 상태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기술 혁신,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의 등장, 소비자 취향의 변화 등 내부적인 요인에 의해 끊임없이 스스로를 파괴하고 재창조하며 진화합니다. 따라서 경기 변동이나 위기는 외부 충격 때문만이 아니라, 시스템 자체의 내재적인 역학 관계에 의해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 있습니다.
2.3. '보이지 않는 손'에 대한 새로운 해석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은 개개인의 이기적인 행동이 의도치 않게 사회 전체의 이익을 가져온다는 개념입니다. 주류 경제학은 이를 시장의 효율성과 자원 배분의 최적성을 보장하는 원리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복잡계 경제학은 이를 다르게 해석합니다.
'보이지 않는 손'은 시장이 항상 최적의 균형 상태로 간다는 보증수표가 아니라, 수많은 행위자들의 상호작용을 통해 나타나는 하나의 '창발적 질서'라는 것입니다. 이 질서는 때로는 효율적일 수 있지만, 때로는 비효율적인 경로에 갇히는 '경로 의존성(Path Dependency)'을 보이거나, 파괴적인 버블과 붕괴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즉, '보이지 않는 손'이 때로는 '보이지 않는 발'이 되어 시스템 전체를 위기로 몰아넣을 수도 있음을 경고합니다.
3. 주식 시장은 왜 복잡계 경제학으로 설명해야 하는가?
이러한 복잡계 경제학의 관점은 특히 주식 시장의 움직임을 설명하는 데 강력한 힘을 발휘합니다. 주류 경제학의 효율적 시장 가설(Efficient Market Hypothesis)은 주가가 이용 가능한 모든 정보를 즉각적이고 완전하게 반영한다고 주장합니다. 이 가설에 따르면, 누구도 시장을 지속적으로 이길 수 없으며, 주가의 움직임은 예측 불가능한 '랜덤 워크(Random Walk)'를 따릅니다.
하지만 현실은 닷컴 버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인한 금융 위기 등 역사적인 시장 붕괴는 효율적 시장 가설로는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이러한 현상들은 개별 기업의 가치나 경제 지표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투자자들의 집단 심리가 만들어낸 '창발적 현상'입니다.
시장 참여자들은 각기 다른 정보와 전략, 심리 상태(탐욕, 공포 등)를 가진 행위자들입니다. 이들의 상호작용이 전체 시장의 움직임을 만들어내게 됩니다.
주가 상승이 투자자들의 낙관적인 심리를 부추겨 더 많은 매수를 유도하고, 이는 다시 주가 상승으로 이어지는 '긍정적 피드백(Positive Feedback)' 현상이 발생하게 되고, 하락 시에는 공포가 공포를 낳으며 투매를 부르는 악순환이 발생하게 됩니다. 반면, 주류 경제학의 모델은 주로 '부정적 피드백(Negative Feedback)'에 기반합니다. 가격이 오르면 수요가 줄고 공급이 늘어 다시 가격이 안정되는 것처럼, 시스템을 균형으로 되돌리는 힘이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특정 정보나 루머, 유력 인사의 발언 등이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빠르게 확산되면서 투자자들이 맹목적으로 특정 종목에 몰리거나 이탈하는 동조화와 네트워크 현상을 만들어냅니다. 이는 시장의 변동성을 극대화하고, 특정 금융기관의 부실이 전체 금융 시스템으로 번지는 '전염 효과(contagion effect)'를 유발할 수 있습니다.
이 생태계에서는 특정 임계점을 넘어서면 시스템 전체가 아주 작은 충격에도 예측 불가능한 대규모 변화(시장 붕괴)가 일어날 수 있다. 이는 마치 계속해서 쌓아 올린 모래더미에 모래알 하나가 추가될 때 모든 모래더미가 거대한 붕괴를 일으키는 것과 같습니다.
4. 복잡계 경제학과 현재증시 상황
현재 2025년 미국 증시는 사상 최고치 경신을 이어가며 외형적으로는 견고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빅테크 기업 실적과 인공지능(AI) 기술에 대한 기대감이 시장을 이끌고 있습니다. 하지만 복잡계 관점에서는 다음과 같은 불안 요인이 감지된다.
지배적인 긍정적 피드백 루프: 특정 기술주(특히 AI 관련주)에 대한 쏠림 현상이 심화되면서 강력한 양의 피드백 루프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이는 해당 섹터의 내재 가치보다는 '더 오를 것'이라는 기대감, 즉 투기적 심리가 시장을 주도하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밈 주식(meme stock)'의 재등장은 비합리적 동조화 현상이 여전히 시장에 존재함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입니다.
네트워크 집중화 위험: 소수의 거대 기술 기업(Magnificent 7 등)이 전체 시장 지수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구조는 네트워크의 집중도를 높여 시스템 전체의 취약성을 증가시킵니다. 이들 중 한두 기업의 예기치 못한 실적 악화나 규제 강화 등은 시장 전체에 비대칭적인 충격을 줄 수 있습니다.
잠재적 외부 충격: 미·중 무역 갈등 심화, 지정학적 리스크, 예상치 못한 인플레이션 재발 및 이에 따른 통화정책의 급격한 전환 등은 시스템을 임계 상태로 몰아넣고, 연쇄적인 자산 가격 조정을 촉발할 수 있는 방아쇠(trigger)가 될 수 있습니다. JP모건 등 일부 기관에서는 2025년 하반기 경기 침체 가능성을 60% 수준으로 제시하며 경계감을 늦추지 않고 있습니다.
2025년 한국 증시는 정부의 '밸류업 프로그램'에 대한 기대감과 외국인 자금 유입으로 상승 동력을 얻고 있습니다. 특히 반도체 업황 개선이 긍정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복잡계적 시각에서 다음과 같은 취약점이 드러납니다.
강화된 동조화와 외부 의존성: 한국 증시는 외국인 투자자의 수급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습니다. 이는 개별 기업의 펀더멘털보다는 글로벌 거시 경제 지표나 위험 선호 심리 등 외부 요인에 의해 시장 전체가 동조화되는 경향이 강함을 의미합니다. 최근 골드만삭스의 특정 반도체 기업에 대한 부정적 보고서 하나가 시장 전체를 흔든 것은 이러한 높은 외부 의존성과 동조화의 위험을 잘 보여주는 예입니다.
쏠림 현상과 특정 산업 편중: 반도체 등 특정 수출 주도 업종에 대한 과도한 쏠림 현상은 미국 증시와 마찬가지로 포트폴리오의 비대칭성을 심화시킵니다. 해당 업종의 경기 순환이나 글로벌 공급망 변화에 따라 시장 전체가 크게 흔들릴 수 있는 구조입니다.
시스템적 리스크 요인: 높은 가계부채와 부동산 시장의 불안정성은 금융 시스템 전반의 잠재적 위험 요인입니다. 만약 외부 충격으로 인해 자산 가격이 급락할 경우, 부채 문제와 맞물려 금융기관의 건전성을 위협하고 이는 다시 주식 시장의 시스템적 리스크로 전이될 수 있습니다.
5. 결론: 복잡계를 이해하는 것이 미래를 준비하는 길
복잡계 경제학은 경제를 예측 가능한 기계가 아닌, 예측 불가능하지만 그 나름의 패턴과 질서를 가진 살아있는 생태계로 바라보게 합니다. 이는 주류 경제학이 이룩한 성과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한계를 보완하고 우리가 미처 보지 못했던 경제의 역동적인 측면을 조명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완벽한 예측과 통제를 추구하는 낡은 관점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대신, 경제 시스템의 복잡성과 불확실성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창발하는 질서를 이해하며, 끊임없이 적응하고 진화해나가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주식 시장의 격랑 속에서 길을 찾고자 하는 투자자든, 급변하는 시장 환경에 대응해야 하는 기업가든, 더 나은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정책 입안자든, 이제는 복잡계 경제학이라는 새로운 렌즈를 통해 세상을 바라봐야 할 때입니다.